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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기 생가1
    이병기 생가
    소재/출토지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
    분류/종목    지방기념물 제 6호
    시기/수령    조선
    지정일    1973년 6월 23일


    국문학자이자 시조작가인 가람 이병기(1891∼1968)의 생가이다.
    가옥은 조선 후기 양반집의 배치를 따르고 있는데 안채와 사랑채, 광채와 모정 등이 남아 있다.
    모정 앞쪽에 작은 연못이 2곳 있다.
    본디 초가지붕이며 건물 자체에는 특징이 없으나 안채와 사랑채에서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며, 모정과 연못을 배치하는 등 조촐한 느낌을 주고 있다.
    선생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병기 생가2

    난초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 가람이병기(1891~1968)


    가람 이병기는 우리 국문학 연구의 초창기에 올과 날을 세운 학자였으며, 쇠퇴 일로에 있던 우리 시조 시를 부흥·발전시킨 시인이었다. 또한 교육자·한글운동가·애란가로서도 독보적인 분야를 형성하였다. 1910년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1913년 관립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재학중인 1912년 조선어강습원에서 주시경 선생으로부터 조선어문법을 배웠다. 1913년부터 남양·전주 제2여산 등의 공립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이때부터 국어국문학 및 국사에 관한 문헌을 수집하는 한편,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을 연구·창작하였다. 가람의 좌우명은‘후회를 하지말고 실행을 하자’는 것이었으며, 78세 생애에 언제나 떳떳하여 흠결을 남기지 않은 것도 이 좌우명을 실행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 식민지시대에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어야 했고, 이른바 '창씨개명'에도 응하지 않았다. 임종국의 《친일문학론》에 의하면 가람은‘일제시대에 쓴 시와 수필의 어느 한 편에서도 친일문장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얼굴’이라고 하였다. 올해는 가람의 탄생 110주년이자 가람의 서거 33주년이 되는 해로서 21세기에도 가람은 겨레의 스승으로 우러름을 받아 마땅하다. 가람이 50여년간 꾸준히 《일기》를 쓴 것도, 78세 생애에 언제나 떳떳하여 흠결을 남기지 않은 것도 이 좌우명을 실행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일제 식민지시대에 있어서의 가람의 행적을 보아서도 그렇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어야 했고, 이른바 '창씨개명'에도 응하지 않았다. 임종국의《친일문학론》에 의하면 가람은 일제시대에 쓴 '시와 수필의 어느 한 편에서도 친일문장을 남기지 않은 영광된 얼굴'이라고 하였다. 가람 이병기는 국문학자 또는 시조시인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 지칭만으로는 무엇인가 아쉽다는 생각이다. 물론 가람은 우리 국문학 연구의 초창기에 올과 날을 챙겨 세운 학자요, 쇠퇴 일로에 있던 우리 시조시를 부흥·발전시킨 시인이었다. 이 두 가지 면에서의 업적만으로도 가람은 우리 문학사와 더불어 길이 그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학자·시인의 지칭만으로 아쉽다는 것은 워낙 가람에겐 독보적인 분야가 많았기 때문이다. 교육자·한글운동가·애란가·애주가로서의 가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다. 가람은 16세까지 고향 사숙(私塾)에서 한학을 공부하였다. 결혼까지 한 후, 학교공부를 생각하여 전주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학을 하였고, 서울의 관립한성사범학교에 입학할 때의 나이는 20세였다. 가람의 학력은 이것이 전부였다. 한가지를 덧붙인다면, 사범학교 재학 중 매주 일요일 2시간씩 '조선어강습원'에 나가 주시경의 조선어 강의를 청강하였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가람은 거의 독학으로 국문학연구와 시조시 창작의 새로운 경지를 이룩하였던 것이다.


    출처: 문화관광부



    이병기생가 탱자나무

    탱자나무1
    탱자나무
    소재/출토지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 573번지
    분류/종목    지방기념물 제 112호
    시기/수령    200년
    지정일    2002년 1월 4일

    호남과 영남지방에서는 대배분 생울타리로 활용되고 있으며, 열매는 약용으로, 유목(幼木)은 귤나무의 대목(代木)으로 사용된다.
    이병기선생 생가에 자리하고 있는 탱자나무의 수령은 200여년으로 추정되며, 수고 5.2m, 흉고직경19㎝, 수관 동서 6.0m, 남북 4.5m이다. 또한 지상 1.6m 높이에서 6개의 가지로 나뉘어지고, 다시 작은 가지가 원추형으로 수관을 형성하고 있는 매우 아름답고 독특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교통편안내

    - 기차

    기차 이용
    출발지 도착지 비 고
    용산역 익산역 KTX : 1시간 55분 소요
    새마을호, 무궁화호(영등포역경유) : 약 3시간
    여수,광주,목포 익산역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부산 익산역 대전역 → 서대전역 → 익산역 하차


    - 고속버스

    고속버스 이용
    출발지 도착지 비 고
    서울 익산 익산 → 여산터미널(시내버스이용)
    인천 익산 익산 → 여산터미널(시내버스이용)
    부산 전주 전주 → 익산,여산(시외버스이용)
    광주 익산 익산 → 여산터미널(시내버스이용)

    ※ 익산역, 버스터미널에서 222번(좌석버스), 61번(시내버스) 이용, 심막에서 하차 후 걸어서 20분 거리 이병기생가



    - 자가용

    자가용 이용
    출발지 고속도로 및 국도 경유
    서울 경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논산 IC → 1번국도 → 799번 지방도
    서해안고속도로 → 동군산 IC → 익산 26번국도 → 799번지방도 → 여산리
    부산 경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익산 IC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광주 호남고속도로 → 익산 IC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여수 호남고속도로 → 익산 IC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목포 서해안고속도로 → 군산 IC → 익산 26번국도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 금마에서 1번국도를 따라 논산쪽으로 7Km 가량가면 천호주유소가 보이는데 바로 이마을이 여산면 원수리이다. 이곳 천호주유소 왼쪽부근에 가람이병기선생의 생가가 있다.



    약도

    이병기생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