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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산동현1
    여산동현
    소재/출토지    익산시 여산면 여산리 445-2번지
    분류/종목    유형문화재 제 93호
    시기/수령    조선
    지정일    1980년 3월 8일

    문화재로써의 여산동현

    동헌(東軒)이란 지방 관아에서 고을 수령(守令) 들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이다.

    건축 년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시대 후기의 건조물로 추정된다. 건축양식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목조건물로 지붕은 팔작지붕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앞부분의 주춧돌의 높이가 뒷면의 주춧돌보다 높게 되었는데, 특히 좌측 전면의 3개의 주춧돌의 높이가 90㎝ 정도 되는 높은 것이어서 여기에 방이 한칸 마련되어 마루 밑으로 사람이 드나들며 불을 땔 수 있게 하였다.

    이 건물 옆으로는 여산에 부임하여 온 여러 관리의 선정비(善政碑)와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그리고 여산 초등학교 주변에서 옮겨온 척화비(斥和碑) 등 9기의 비가 진열되어 있다. 여산동헌은 본래의 모습을 다소 잃기는 하였으나 전국적으로 남아있는 관아건축이 드물어 귀중한 문화재이다.

    - 자료 : 익산시청, 문화재청



    천주교 순교자들의 비극 현장

    전주 교구의 '제2 성지'라 불리는 여산 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여산군의 속읍지였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심산 유곡(深山幽谷)에 숨어 살다 이곳 여산 관아로 잡혀 온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형벌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한 순교지이다.

    충청도와 전라도, 즉 충남과 전북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는 여산 땅은 학문과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어 천주교 전래가 다른 지역에 비해 앞섰다. 일찍 복음을 전해 받은 반면 박해의 역사가 어느 지역보다 길었던 탓으로 일정한 형장이 없이 마구 처형이 자행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박해가 한창이던 조선 교구가 독립을 한 것은 1831년 9월 9일, 그 안에서도 조선인에 의한 자치가 최초로 실시된 곳은 1931년 전주 교구였다. 조선 교구 설정 1백주년을 맞아 전주 교구를 방인 자치 교구로 선물받았던 것이다. 이는 전주 지방의 신앙이 지닌 깊은 뿌리를 말해 주는 것이다.

    호남 최대의 신앙 산맥을 이루는 것은 대둔산과 천호산을 기점으로 한다. 일찍이 복음은 이 두 산의 줄기인 금산(錦山), 진산(珍山), 고산(高山)에 전해져 수많은 교우촌들이 산골짜기마다 형성됐다.

    병인박해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교우들을 혹독한 박해의 칼날 아래로 내몰았다. 비록 조그마한 고을이었지만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을 마구잡이로 처형시킬 수 있었다.「치명 일기」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2명에 이르는 여산은 특히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가혹한 처형 방법으로 유명하다. 여산 동헌에 잡혀 온 신자들은 참수, 교수는 물론, 백지 사형(白紙死刑)으로도 죽임을 당했다.

    "백지 사형이란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 시키는 처형 방법이었다."



    여산성지에서의 여산동헌은

    여산이 품고 있는 성지는 동헌과 옥 터, 여산 숲정이와 배다리, 뒷말 치명 터 등 곳곳에 널려 있어 어찌 보면 여산 전체가 하나의 성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동헌은 당시 사법권을 비롯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고을을 다스리던 곳이였다. 이 동헌 자리 주위에는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남아 있어 유적을 돋보이게 한다. 특히 동헌 마당에는 옛 부사들의 선정비(善政碑)나 불망비(不忘碑)들과 함께 대원군의 척화비(斥和碑)가 서 있다.

    여산 동헌은 현재 전라 북도 유형 문화재 제93호로 지정돼 있고 맞은편 여산 초등 학교 종합 학습장으로 변해 버린 여산옥 터는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이 굶주림에 못 이겨 옷 속에 있는 솜을 뽑아 먹다가 처형지로 끌려 나오자 풀까지 뜯어 먹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장날이 되면 공개 처형장으로 변했던 '배다리'와 '뒷말 치명 터'는 하사관 학교 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데 배다리에서 참수된 시신은 배다리 옆 미나리꽝에 버려졌고 뒷말 치명 터에서는 신자들을 정자나무에 목매달아 죽였다.



    여산동현2 여산동헌 느티나무

    (전라북도 기념물 제 116호)
    이 느티나무의 유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할 수 없다. 다만 여산동헌과 주변에 7주의 대형 느티나무가 집중 분포되어 있음에 따라 동헌의 설치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산은 전주에 속해 있다가 공양왕 3년(1391)감무를 두고 낭산과 공촌, 파제 두 부국의 권농사(勸農使:고려시대 농업권장 ·재해농민 구제 등의 업무를 관장하기 위해 파견한 지방관직)까지 겸임하였고, 세종 18년(1436)에는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고 함으로 조선 태종대에서 세종대에 동헌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식재되었을 것으로 보여 수령은 600년정도로 추정한다. 나무의 흉고둘레는 4.5m, 높이는 22m이다.



    찾아가는길

    호남 고속 국도 논산 인터체인지에서 연무읍 쪽으로 나와 1번 국도를 따라 남행하면 전라 북도로 들어선다. 이곳서 2km쯤 가면 여산면 소재지인 여산리에 이른다. 여산 초등교 건너에 여산 동헌이 있다.







    교통편안내

    - 기차

    기차 이용
    출발지 도착지 비 고
    용산역 익산역 KTX : 1시간 55분 소요
    새마을호, 무궁화호(영등포역경유) : 약 3시간
    여수,광주,목포 익산역 KTX, 새마을호, 무궁화호
    부산 익산역 대전역 → 서대전역 → 익산역 하차


    - 고속버스

    고속버스 이용
    출발지 도착지 비 고
    서울 익산 익산 → 여산터미널(시내버스이용)
    인천 익산 익산 → 여산터미널(시내버스이용)
    부산 전주 전주 → 익산,여산(시외버스이용)
    광주 익산 익산 → 여산터미널(시내버스이용)


    - 자가용

    자가용 이용
    출발지 고속도로 및 국도 경유
    서울 경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논산 IC → 1번국도 → 799번 지방도
    서해안고속도로 → 동군산 IC → 익산 26번국도 → 799번지방도 → 여산리
    부산 경부고속도로 → 호남고속도로 → 익산 IC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광주 호남고속도로 → 익산 IC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여수 호남고속도로 → 익산 IC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목포 서해안고속도로 → 군산 IC → 익산 26번국도 → 799번 지방도 → 여산리

    ※ 여산면에 이르면 여산 초등학교 건너에 여산 동헌이 있다.



    약도

    여산동현3